언제나 만날 때는 좋지만 헤어질때는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게 동창회인 것 같다.
동창회 날짜가 다가 올 수록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어떻게 살고 있고, 또 얼마나 많이 변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설래이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몇주 전부터 사무적인 일은 동창회 날에 맞추어 미리 처리 할 것과 나중에 처리 할 것을 구분하고, 행여나 엉뚱한 말이라도 할까봐서 마눌한테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각인시키며 보낸다.
먹는것과 입는거 걱정 없이 학창시절을 보낸 대도시와, 논 밭들이 많은 평야지대에서 자란 그런 사람들과는 달리, 앞뒤를 돌아봐도 산 밖에 보이지 않는 골짜기에서 어렵게 자란 우리들 이기에 더 각별한 것 같고, 형제 자매처럼 끈끈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 그 무엇' 그 무엇이란 어떤 것일까?
가까운 집을 일컬어 어른들은 이런 말을 써왔다.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이고 젓가락이 몇 개인지도 안다'고,
모두가 어렵게 살고있는 몇 집 되지 않는 작은 마을에 집집마다 속속들이 사는 모습들을 알고 있다는 얘기이고, 그만큼 이웃간에 어려움을 나누며 살았고, 없는 집안에서도 특별한 음식을 만들면 이웃간에 나누어 먹고 했었던것 처럼, 그런 환경속에서 살갑게 살아온 우리들,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나는 '초등학교 동창회' 이 말만 들어도 가슴이 아려올 때가 많다. 아마도 그것은 친구들을 만남으로써 특히나 더 어려웠던 나의 어린시절을 회상해 볼 수 있고, 오고가는 대화속에서 추억을 되새기며 지금의 삶을 돌아 볼 수 있는 계기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식으로 '동창회'라는 이름이 붙기 전부터 친구들의 모임에는 한번도 빠짐 없이 참석 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즐겁고 웃음만 가득해야 할 우리 동창회가 이번 모임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모임으로 기억 될 것 같다.
그간 조직적이지 못하고 각자 연락이 닿는 친구들과의 연결로 몇 번을 만나고 한 것이 고작이었는데, 어느덧 회장과 총무를 선출하고, 간단한 회칙도 만들어 가면서 어엿한 '옥동초등학교 47회 동창회'라는 조직이 구성 되면서 우리도 이만큼 성장 한 것에 마음 뿌듯했었다. 그러나 이번 모임은 그동안 모임 중에 참석인원이 가장적은 13명에 지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더할수록 우리는 뭔가 매끄럽고 평탄하지 않는 울퉁불퉁한 길을 어렵게 어렵게 굴러가고 있는것 같은 그런 느낌을 이번 동창회를 통해 느끼게 되었다.
그 원인을 따지자면 끝도 없겠지만, 우선 우리 모두의 책임 이라는 것과, 그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힘들게 살아가는 이 각박한 사회에서 누구나 '동창회'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차순위 아니면 삼순위가 될수 밖에 없다. 먹고 사는 것이 우선 순위라는 현실에서 회장과 총무들도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사람들 모두 본인이 그 직을 맡고 싶어 맡은 것도 아니고, 강요에 의해, 또는 친구들을 위해 그 직을 수락 했음에도,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 했었던 것이 아닌가? 또 '회장과 총무가 알아서 하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각자의 노력은 하지 않았을 뿐더러 모두가 미온적인 자세에 그 원인이 있는것 같다.
동창회 날짜를 정함에 있어서도 그렇다. 카페를 통해서 때와 장소를 의논했고, 카페에 가입하지 않은 친구들을 위해 문자 메시지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말 한마디 없다가 동창회날이 임박해서야, 그것도 참석여부의 질문을 받고서 불참의사를 밝히는 그 무책임함과, 조직이 없을때보다 더 조직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직이 없을 때는 각자 서로서로 연락이 닿는 사람들끼리 연락을 취해 참석을 종용했었지만, 모두가 집행부에만 미뤄두고 주인이 아닌, 그저 손님으로서 대우를 받고자 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동창들 모두 합쳐야 40여명 밖에 되지않는 작은 인원이니만큼, 조금만 노력 하면 다른 어느 동창회보다 잘되고 남들이 부러워 하는 그런 동창회가 되리라 생각 한다. 이제 여름모임도 8월 셋째주로 정해진 만큼 서로서로 힘을 모아 동창생 전원이 모두 참석 할 수 있는 그런 동창회가 되었으면 한다.
동창회 참가기를 쓴다는게 엉뚱한 쪽으로 얘기가 흘렀다.^^
이번 동창회에 따른 서울 나드리는 동창회 참석 목적만이 아닌 약간의 회사업무도 병행하는 그런 성격의 나드리 였다. 공사입찰에 따른 현장조사 성격의 회사 업무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불편하고, 그렇다고 차를 가져가기에는 그 나름대로 또다른 불편이 있어, 고민끝에 성남에 살고 있는 친구 진우에게 부탁하니 흔쾌히 응해 준다. 아침 일찍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성남에 들러 진우와 함께 의정부쪽에서 일을 보고, 함께 점심식사를 한후 나만 도봉산 역으로 향한다. 역까지 나를 태워주면 외곽순환도로 진입이 불편하고, 또 미안한 마음에 도중에서 내려 한참을 걸었다.
도봉산역에서 성북으로 이어지는 전철은 1982년 복선으로 확장공사를 할 때 약 1년간 몸담았던 곳이라 감회가 새롭다. 창밖을 이쪽 저쪽으로 내다보며, "저곳은 이렇게 바뀌었구나" "저건 내가 시공한 것인데" "상계동쪽은 논 밭뿐이였는데 이제는 아파트 숲으로 변해 있고" "그때 이곳에 땅 한필지 못사고 뭘 했나?" 이런 저런 생각과 변해버린 도시를 바라보면서 옛생각에 젖어 성북역까지는 그야말로 눈 깜짝 할 사이에 간것 같다.
<동창회 모임 장소>
청량리역에서 내려 춘천에서 오는 영순이를 만나 모임장소인 장안동 배봉초등학교앞 4거리로 향한다.
시간상 여유도 있고 일찍가면 영업에 방해도 될 듯 하여, 중간 쯤 찻집이라도 들러 차 한잔 하고 가려니 찻집도 보이지 않고, 혹시나 눈에 띄어 들어 가려면 문이 닫혀 있고, 심지어 '상중'이라고 써놓은 집도 있었다. "나 원 참~ 차 한잔 마시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ㅉㅉ" 이리저리 한참을 다니다. 옥동에 있었던 '정다방'과 같은 이미지를 풍기는, 지하에 있는 다방이 있어 차 한잔 하며 시간을 보내고, 길 가에 나와보니 붕어빵과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어 옛날 생각하며 붕어 몇마리 해치우고 '황덕불 참숯 석쇠 불고기'집에 도착 했다.
언제나 시끌벅적 분위기 업 시키는 형곤이,
동창회는 빠지지 않고 항상 참석하는 승재,
눈 빠지게 동창회를 기다렸다는 경순이,
이렇게 강원도 촌에서 온 세 사람이 와 있었다. 거기에 추가하여 나와 영순이, 조금 있으니까 덕기까지, 이제 서서히 분위기가 조성되어 소주도 주문하고.......
모두가 문만 열리면 시선이 문 쪽으로 집중한다. 눈에 많이 익은 듯한 얼굴을 한 여자가 들어와 동창회에 처음나온 동창생인줄 알고 모두 한참을 뚫어지게 처다 보았더니 동창이 아니라 이 집 여주인 이었다. 이렇게 다들 속았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처음 본 듯한 얼굴에 모자까지 쓰고 들어오는 여인네, 우대선이라나, 뚱뚱할 것 이라는 막연한 내 생각 때문이였는지 처음에는 정말 몰라봤는데, 자꾸만 보니까 옛날 얼굴 그대로 있는 것 같았다.
신세 훤해진 형덕이, 의젓하고 여유가 있어 보이는걸 보니 돈도 많이 벌었나 보다.^^ 장학사가 되고나니 더욱 더 바빠진데다가 총무직책까지 맡고 있는 흥식이,
동창회에 처음 나온 성자, 뭔가 못마땅한 것 같은 인상을 풍기면서 출석률은 양호한 길준이,
동창회에 대한 남 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는 정수까지 도착하여 분위기는 무르익고.....
친구들을 위해 덕기가 준비한 맛있는 음식들, 분위기 잘 맞추는 주인 아주머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오고 가는 술잔 속에서의 대화......... 역시~ 고향 친구들은 좋은 것이여~^^
오랜만에 친구들 끼리 모였는데, 노래가 빠질 수 있나~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기고,
요즘 돈 독이 올라 돈버느라고 늦게온 순녀는 밥도 안 먹고, 배는 고프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돌리고~♬♬ 돌리고~♬♬
또 돌리고~ ♬ 돌리고~♬♬
형덕이는 리싸이틀 하냐?
나는 목이 아파 제대로된 노래는 한곡도 부르지 않았다.
그렇게 때려 먹고 얼마나 중노동(?)을 했으면, 또 배고프다고 해장국집에 가잔다. 해장국과 더불어 소주 몇 병 해치우고, 한 사람 두 사람 씩 집으로 가고 남은 사람은 정수, 경순이, 영순이, 덕기, 나, 이렇게 다섯명 뿐이다. 갈 곳은 여관 뿐이라 가까운 곳에 들어가니 주인인지 지배인인지 모르는 그 인간,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지, 기분 나빠 나오기는 했는데, 나오고 보니 갈 곳이 없다. 다섯명이 터덜 터덜 걷고 또 걷고 하다보니 어느덧 경남호텔 근처다. 방 두 개 잡아 덕기와 자는데 왠 전화 벨소리가 그렇게 울리는지... 그 술 기운에 전화를 받더니 나가 버리고.... 잠에서 깬 나는 말없이 나간 덕기가 언제 들어올 것인지 몰라 문도 잠그지 못하니 잠도 오지않고.... 한시간은 버티다 그냥 잠그고 잠을 청했는데 때를 놓쳐서인지 잠도 오지 않고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 네 명이 해장국과 차 한 잔씩 하고(아침에 해장국 먹으라고 순녀가 돈을 주고 갔단다,맛있게 잘 먹었다 순녀야^^) 택시로 청량리역에 도착하고........ 헉!~ 정수가 우리 마눌 갔다 주라고 한 선물을 커피숍에 두고 왔다.ㅠㅠ~ㅠ 물건 값보다 성의가 괘씸(?)해서라도 돌아가 가져 와야지~^^(ㅎㅎ 나는 여복(女福) 터졌다니까.ㅎㅎㅎ)
세 여자는 청량리역 근처에 있는 W(더블유)라는 카페 2층에 있다고.... 무작정 2층으로 올라 가려니까 주인인 듯한 여자가 2층은 아직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올라가지 못하게 한다. "저기~ 여자들 셋이서 올라가지 않았나요?" "아 예~ 술 드시는 분들요?" ㅎㅎㅎ 웃음이 절로 나온다. 대낮부터 술먹는, 여자 술꾼들을 찾아다니는 형편 없는 사내로 보여서....^^ 2층 전체를 전세라도 낸 모양 넷이서 즐겁게 맥주를 마시며 1박2일의 서울 나드리를 마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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