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쓴이 박 복 진>
- 저와 같은 주로에서 뛰다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고
안봉현님의 명복을 빌면서 이 글을 썼습니다-
K 시인에게 보내는 한반도 종단 622km 완주 편지,
- 백색 실선을 �는 부나비-
K 시인아,
대회 출발을 위해 서울에서 무려 6 시간을 달려서야 간신히 도착된 전남 해남 땅끝 마을
은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에는 이미 너무 큰 관광명소가 되어있었다. 모텔들,
상점들, 음식점들... 나라 전체가 이런 식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이곳이라고
옛날 그대로 있을 수야 없었겠지만, 그래도 땅끝 마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싶다면 조금
은 옛 그대로를 간직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이제는 땅끝 마을이라는 단어에서 맡을
수 있는 원초적이고, 비 가공된, 조미료를 치지 않은 투박한 막사발 위 산나물같은 느낌
은 다 달아나 버렸다. 아마 이름도 곧 토말 타운이라던가, 영어로 남쪽 끝 Southern
Most Ville 이라던가 하는 부류로 바뀔 날도 머지않을 것 같다. 오늘밤부터 앞으로 6 일
하고도 6 시간을 달려야 할 울트라 마라토너에게 가당치도 않은 걱정이지만 생각이 이
런 데에 미치고 있으니 이거야원, 제 정신인지...
K 시인아,
서해에서 동해까지 한반도 횡단 마라톤 308 km 를 뛸 때 출발지에서 서해 바닷물을 보
았었다. 부산의 태종대에서 파주의 임진각까지 한반도 종단 537 km 를 뛸 때, 역시
출발지 동해의 바닷물을 보았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나라 한반도 대각선의 가장 긴
거리, 이곳 남해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622 km 의 시작점에서 남해의 바닷
물을 바라본다.
반도인의 생각 중에서 바다가 보이면 육지의 끝이다! 와 육지가 보이면 바다가 끝이다!
라는 두 가지 생각 중 어느 게 맞을까? 삼면의 바다를 놓고 볼 때 어디까지가 남해고
어디까지가 동해고 어디까지가 서해일까?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에 가면 희망
봉이 있다. 지도상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대륙의 꽁지점에 Cape of Good Hope
이라고 큼지막하게 간판을 써놓고 모든 관광객들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나는 대서
양과 인도양이 갈라지는 지점에 가 보았다고.... 그러나 현지 안내인은 말한다. 그건
웃기는 말이지요. 무슨 놈의 바닷물이 여기까지가 인도양꺼고 저기까지가 대서양꺼고...
그런 게 어디있어요. 한데 뒤섞여 조류따라 흘러다니는 게 바닷물인데 그 경계가 어디
있어요. 물론 경계야 있겠지만 어떻게 그걸 자로 재서 경계를 만든단 말이요?
그렇다. 거대한 바다는 위와 아래 혹은 옆과 그 옆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냥 다 포용
한다. 그 얼마나 쓰잘 데 없는 일이런가? 마찬가지로 5 km , 10km, 40 km 를 뛰는
주자들에게는 그 구간 표시가 짧네, 기네 혹은 이와 유사한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한반도를 서에서 동으로, 남에서 북으로, 대각선으로 질러 뒤는 주자들에게는 이런
화제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냥 뛰는 길이 있으면 뛰는 것이고, 뛸 시간이 있으면
그 때 까지 뛰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의 남해도 동해도 서해도 뭐 다 거기가 거기고 거기가 거기려니,
피서를 동해 바다로 갔네, 남해 바다로 갔네 무슨 차이가 있으랴..... 이제 곧 출발
얼마 전이라고 복장을 갖추고 출발지 위로 올라가시라는 조직위의 안내 방송이 들리
는데 나는 아직도 이런 엉뚱한 생각뿐이다. 왜 그럴까? 622km, 이게 도대체 얼마
만한 거리인지 아직도 현실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현실감이 없다니까,
아직도... 니미럴 !
짧은 시간 왁자지껄 웃고 떠들고 히덕거리며 출발 의식이 끝나자 144 명의 주자들이
토말 기념탑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6 일하고도 6 시간을 달리는 대한민국 한반도
종단 622 km의 울트라 마라톤이 시작된 것이다. 목줄을 풀어 놓은 것 같은 일군
의 썰매 끄는 개떼들처럼 잠깐 사이에 해변을 돌아 주자들은 육지내 국도로 접어들
었지만 오메, 어쩔라고 그런지 나는 아직도 실감이 안 나는 대회고, 실감이 안 가는
거리다. 아직도... 그냥 자꾸 눈앞에 펼쳐진 남해 바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 바다 공간
을 메꾼 작은 섬들. 지난 달 덕수궁 미술관에서 본 남농 선생의 화필이 휘적거려 놓은
작품 감상 기분만 든다. 아이쿠, 이게 길존지, 흉존지, 아직도 나는 마라톤 실감이 안
난다.. 622 km 한반도 종단 실감이, 니미럴 !
K 시인아,
첫 밤 100km 구간은 간단히 지나갔다. 발의 물집도 근육의 오그라짐도, 그리고 어제
오후 6 시에 출발, 밤새 꼬박 달렸건만 졸음 하나 오지 않고 첫 100 km 구간은 거짓
말처럼 즐겁게 지나갔다. 얼마나 여유를 부리며 갔는지 길가의 “ 재건 슈퍼” 라는
간판을 보며 도대체 저 집의 역사는 얼마나 될까 라는 생각까지 해 보았으니까.
재건, 재건 우리가 유소년 시절 골목길에 삽들고 나와 불렀던 노래, “ 재건합시다 ”
벌써 반세기 전의 구호이자 노래가 아니던가? 그 “ 재건 ” 에 놀랍고 발빠르게도 현대
최첨단 유행인 “슈퍼” 를 갖다 붙힌 조그만 점방 주인장의 세계를 보는 안목이 정말로
놀랍다.
K 시인아,
비가 온다. 그러자 아직껏도 실감이 안 나던 울트라 마라톤 622km 의 실체가 내 몸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후두둑, 후둑.. 급박하게 등에 진 배낭 속에서 비옷을 꺼내 내 몸
을 두르니 그 때 까지 사뿐히 내 옷에 내려안기던 비가 요동을 하며 몸에서 튕겨 나가는
소리를 낸다. 비 올 것을 대비해 비닐로 코팅해서 들고 간 622km 전 여정의 마라톤
여정표도 후두둑! 후둑 떨어지는 빗방울을 거부하는 소리를 낸다 . 다다닥, 따다닥 !!!
아, 이 비가 오는구나, 비가 온다. 남도 땅 울트라 마라톤 길에 비가 오는구나 ! 비가
거세지자 이제 빗물은 안경알을 타고 줄줄 흘러내려 시야 확보마저 어렵게 만든다.
그래도 동료 주자들은 잘도 뛴다. 이 분들은 지금 뛰는 자세, 뛰는 생각 말고는 도통
다른 게 없는 분들이다.
정말로 대단들 하시다. 도로가는 제법 내린 비로 봇물을 이루며 내 신발 밑에서 첨벙!
첨벙 소리를 낸다. 그래, 이제야 나는 뛰는 실감이 난다. 내가 지금 마라톤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5 회전 이상이 지나고 얼굴이 퉁퉁 붓고 코피가 터져서야
이제 실력 발휘가 되는 어느 프로 복서처럼 나도 이제야 달리는 실감이 난다. 이제야
말이다, 니미럴 !
100 km 주자 확인점을 지나고 나설 때 준비해 가지고 간 신발을 갈아 신었다. 지금
부터는 보통의 마라톤 상식가지고는 안된다. 평소 신던 270 mm에서 두 사이즈를
건너뛴 280mm 신발로 갈아 신었다. 이 10mm 가 지금부터 부어가는 내 발의 부피를
감당해 줄 것이다. 더 이상만 붓지 않는다면, 아니 제발 붓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
이다. 500 km 지점쯤에서는 더 큰 사이즈로 다시 한 번 더 갈아 신어야 할 것이지만
일단 280 mm 로 가기로 했다.
K 시인아,
며칠 낮 밤을 뛰는 울트라 마라토너가 제일 통과하기 싫은 구간이 어디인지 알고 있는
지? 그것은 외로운 산길도 아니요, 비바람 억센 해변가 외딴 길도 아니요, 바로 번화한
도심 통과 구간이다. 오락가락 내리는 비에 따라 비옷을 입었다가 벗었다가를 반복하
며, 광주 시내를 벗어나는 길은 정말이지 짜증이 나는 구간이었다. 번화한 도심의 거리
를 메운 행인들은 우리를 바라본다. 호기심 반, 측은지심 반, 그런 시선과 맞닥뜨리면
나는 괜한 주눅에 빠져든다. 아이쿠, 저 사람도 참, 각시 고생깨나 시키겠구먼... 이렇게
날 궂고 비오는 날 철벅 거리며 뛰어 댕기는 폼이 어지간히 뛰는 것 좋아하는 모냥인
데, 쯧쯧... 그런 눈치를 내가 모를 리 없다. 그래서 괜스레 나 혼자 더 주눅이 든다.
아내는 말했다. 제발 좀 가만히 잘 생각해 봐요. 지금 당신이 뛸 나이에요? 뛴다는 사람
에게 �아가서 말릴 힘도 없이 뵈는 사람이, 아, 그래 622km 를 뛰어요? 땅끝에서
고성까지?? 잠 안자고 그냥 계속??? 지금이라도 그만 두어요, 제발 .....
수많은 교통 신호등을 거쳐 어렵게, 어렵게 광주 도심을 통과하자 이제는 매정한 자동차
전용 도로가 나왔다. 좌우, 앞뒤, 나를 에워싸고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의 굉음, 타이어
와 아스팔트의 마찰음, 그리고 가끔씩 너무 가까이 붙어서 달려오던 트럭이 깜짝 놀라
눌러대는 경적소리.... 영락없이 나는 닭장 속에서 사람 손에 �기는 중복 날의 장닭
신세였다. 내달아오는 차량들을 바라보랴, 갓길의 움푹진푹 도로 형편을 살피랴, 갓길가
에 모아진 잔자갈 무더기를 피하랴... 이미 비에 젖고 긴 거리 주행에 부르트기 시작한
발바닥 물집구석은 조그만 잔자갈을 밟아도 금방 비명을 지르게 만든지 오래다.
언제 그랬는지 비가 그치자 머리가 벗겨질 정도의 퇴약볕이 다시 주자들을 괴롭힌다.
그러자 각자가 준비한 기발한 아이디어의 볕 가리개가 등장한다. 콩밭 매는 아낙이 쓰는
것 같은 기다란 차양의 모자, 그 모자 차양 끝에 핀으로 연결된 수건으로 목을 감싸게
만든 특수 그늘막, 또 어느 주자는 장남감 형 조그만 양산 하나를 들고 뛰고 계시다.
모두가 말을 잃은지 오래다. 고통이 시작된 지 한참 오래인 듯 어느 주자는 이미 포기
할 구실을 찾고 있는 눈치다. 지금까지 바지로 위장하고 입고 뛰던 주자는 옷핀 몇 개를
풀자 스커트로 변신, 하초에 통풍 기능을 극대화 시켜 놓는다. 기가 막히다. 저 정도의
열정이 아니면 이 종단 대열에 끼이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걸그적 거릴 것 없이
아래에서 덜렁대고 있을 두 요령을 상상하며, 그 요령의 적당한 덜렁거림 리듬을 타면
이것 또한 달리는 속도에 큰 도움이 될 터이니... 고것 참! 한국인의 두뇌는 정말 우수하
다. 하기사 박 도 아닌 반쪽짜리 반 성씨로 유엔 사무총장 까지 해 먹는 게 우리 민족인
데 하초의 통풍장치 하나쯤 고안 못할 것 없겠지...
200km 주자 확인점까지의 길은 정말로 지루했다. 이름도 아름다운 100 km 구간의 풀
치 터널을 통과 할 때의 기분은 온 데 간 데 없고, 대구의 팔공산 고개를 연상시키는 긴
구간, 이름하여 추월산 구간은 밤새 내리는 비로 몸이 젖어 뛰어도 뛰어도 한 번 쳐들어
온 한기는 뒷걸음질을 몰랐다. 몹시 추웠다. 비는 금 년치 강수량 전체를 오늘 밤 전부
쏟아 붓고 내일 해 뜨면 놀 채비를 하려나 보다. 그렇게 밤새 비 맞고 뛰며 오늘 밤은
도대체 시간이 지나 가는지 멈췄는지 알 수 없는 지루함으로 한 발 한 발만 헤며 뛰다
보니 그래도 시간은 흘러 졸음으로 감긴 두 눈이 심봉사 청이 이름 부르며 눈뜨기 직전
의 바로 그 눈꺼풀 모양을 통해 본 먹구름 사이로 희미한 여명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
이렇게 해서 이제 200km 지점, 둘째 날이 밝았다.
K 시인아,
아직도 언제까지 뛴다는 계산은 하기 이르다. 그냥 묻지도 말고, 물으려고 맘도 먹지 말
고 생각도 말고 그냥 더 뛰어야 한다. 고맙게도 이곳은 전주에서 가까운 지점이라 고등학
교 친구가 꼭두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응원차 나와 주었다. 수필가 정현창, 고마웠다. 울컥
하고 눈물이 났다. 나는 여기서 내가 준비해 가지고 간 감사패를 수필가 정현창님에게 건
네주었다. 우리 홈 페이지 oh my shoe.com 에 일 년 365 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좋은
글을 올려 주시어 우리 faab 마라톤화 고객들에게 아침마다 마음의 양식을 선사 해 드린
그 공로로 드렸다.
조금 후 또 K 시인, 자네가 나와 주었지. 짧은 만남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겠지만 K 시
인 자네는 이 말만 하고 돌아갔지. 어제 밤 비가 계속 내려서 아이고 이거 어쩐디야, 보
통일이 아니네.. 라고 하며 뜬 눈으로 밤을 세웠다고. 그리고 정말로 난감한 표정을 지으
며 말하길, 이것 참, 어떻게 잘 가라고 해야 하나, 그만 하라고 해야 하나, 참, 할 말을
모르겠네. 내가 시방 뭐라고 해야 하나 ....? 어쩌것어, 몸이나 잘 추스르고 정 안되면
그냥 어떻게 거시기 혀 봐.... 응 ? 그것도 용기니까?
K 시인은 차마 포기라는 단어는 입 밖에 흘리지 않았다. 고마웠다. 그래 암, 아암, 고마
워.. 하는 데 까지 해 볼게... 그러고서 나는 다시 주로에 섰다. 몸이 괴로워 제대로 다
시 뛰는 폼이 잡히는데는 전봇대 한 칸의 거리가 필요했다. 어젯밤 맞은 비로 삭신에 무
리가 갔고, 특히나 발가락 사이가 부르터서 물집이 잡혔다. 다음 300 km 주자 확인점
에 가서 물집 처치를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나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바
로 거기서 그 물집 처치를 했어야 했다. 이 때 실기를 한 어리석음 때문에 나는 두고
두고 남은 종단길에서 뼈저린 후회를 해야 했다. 수도 없이 많이 들었던 울트라 고수
들의 이야기, 물집이 생기기 전에 조치를 취하고, 생기면 그 즉시 달리기를 멈추고 조치
를 취하라는 고언을 나는 잊고 있었다. 달리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에
대한 대가를 나는 혹독하게 치러야했다. 달리는 내 자세는 나도 모르게 한 쪽으로 자꾸만
기울어져 갔고 다리는 지팡이 잃은 찰리 채플린처럼 뒤뚱거렸다.
지리한 도심 구간인 전주 시내를 통과하고 이제 바야흐로 대둔산 자락을 끼고 대전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다. 비는 억수 같이 쏟아지고, 날은 저물어 가고, 발바닥, 발가락의 상
처는 깊어갔다. 최근 개통된 것 같은 자동차 직선화 도로. 무엇보다도 이런 도로는 눈곱
만큼의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쏟아지는 빗소리, 달리는 차량이 만들어 내는 물보라,
그것들이 훅! 하고 내 온 몸을 에워쌀 때의 그 불유쾌한 냉기, 뒤돌아보지 않아도 멀리
서 달려오는 차량의 종류를 짐작으로 알 수 있다. 화물차인지, 승용차인지, 화물차면
짐을 실은 차인지 빈 차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차들이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가며
차체가 만들어내는 물보라 후폭풍의 강도를 나는 눈을 감고 인내한다. 가이 살인적인
풍경이다. 이미 200km 를 넘어 내가 하던 보통의 울트라 마라톤 거리가 상회되니
이제 조금씩 완주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한다.
K 시인아,
인간이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할 때는 언제인가? 그것은 희망을 잃기 시작할 때가 아닌
가 한다. 평상시의 마라톤, 40 여 몇 km 를 뛰거나 혹은 내가 한 두 달에 한 번씩
뛰는 100 km 울트라 마라톤 대회의 경우 내가 힘의 한계를 만나거나, 너무 지쳐 다른
생각이 날 때, 포기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 아, 이제 몇 km 만 더 가면 된다, 라든
가, 이제 날이 새고 있으니 몇 시간만 더 가면 이 고통은 끝이 나고, 내가 늘 하던 대로
완주선에서 나의 아내 이름을 부르며 씩씩하게 골인 할 수 있다! 라는 희망이 보이기에
그 순간의 고통을 감내한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몸은 젖을대로 다 젖었다. 발은
부르터서 한 걸음, 한 걸음이 통증의 연속이다. 졸린 두 눈은 억지로 위로 치켜떠야
겨우 앞을 분간해서 전진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느 지점에 와 있는가? 이제
겨우 250 km 지점을 향해 가고 있다. 앞으로 이런 상태로, 아니 매 시간 이 보다 더
한 상태로 지금까지 온 길의 두 배를 더 가야 한다. 이러니 절망감이 안 나겠는가?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이 구간 못 미쳐 벌써 26 명의 주자가 포기를 선언했다한다.
스멀스멀 완주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을 치떨며 좌우사방 캄캄한 산골길을 얼마를 더 갔
다. 250km 주자 확인 지점이다. 나는 여기서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의 천사와도 같은
미소를 보았다. 나는 이 분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이 분은 우리가 울트라 마라톤을 하고
있는 현장에 언제나 계시는 분이시다. 이 분은 이미 마음이 약해져서 그 누구의 품에
라도 달려가 안기고 싶은 모든 주자의 그런 마음을 알고 계시다. 그런 주자가 기대하는
말씀만을 골라서 해 주시는 것 같다. 그리고 추위에 덜덜 떠는 주자들을 위해 음식을
갖다 주시는 그 정성, 그저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잠깐의 휴식 후 빗속을 뚫고 다시
어둠속으로 나아가는 주자들을 보고 한마디 하신다. 그러니까 왜 뛰어요, 뛰지 말아요,
아, 지금이라도 그냥 돌아와요? 이 말 속에 들어 있는 진의가, 주자 여러분, 절대로 포기
하지 말고 꼭 완주하세요! 라는 뜻인 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내 까짓거 오늘 한 번 해 볼랍니다.... 고통이 시작되고 수마와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
고, 더 갈 수 있을 지 없을지 불확실성이 내 앞에 전개된 지금이야말로 울트라의 참 시작
입니다. 내 정말로 한 번 해 볼랍니다.
지금껏 살면서 제대로 쪽 한 번 못쓰고 비럭질 해먹은 망아지처럼 항상 뒷전에서 서성거
렸던 어두운 과거가 있었다면, 이 번 기회에 한 번 본 떼를 보여주렵니다. 내 자신이
정말로 그렇게 심약한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사는 데 단지 경험이 없어서이지 실재로 참
나는 그렇지 않았는지 한 번 나 자신을 시험 해 보렵니다. 해서 안 될 것 또 뭐 있겠어
요?
자, 지금부터 시작이다! 나는 디립다 캄캄한 허공을 향해 소리 한 번 질러댔다. 야이,
시볼넘들아 ! 내가 못 할 줄 알고? 뭐? 내가 못 한다고?? 그래 한 번 봐라 ! 보라구,
이 시볼넘들아, 똑똑히 보라구?? 나는 허공을 향해 발악을 해댔다.
250 km 주자 확인 지점에서 어느 만큼 지난 대회 3 일째 날, 나는 이미 반쯤 내 얼을
내보냈다. 그렇게 해서 발바닥의 통증을 잊고자 했으며, 그렇게 해서 나머지 400 여 km
를 더 뛰려는 내 의지를 곧추 세웠다. 대둔산 정상 이라는 표지가 비바람 속에서 희미하
게 내 앞에 보였다. 새끼 발가락의 피부가 벗겨져 칼로 가운데 짜른 토마토 처럼 빨갛게
드러났다. 살이 아리고 뛰다가 발이 조금만 비껴지면 비명이 자지러지게 새어 나왔다. 나
는 갈 것이다. 끝까지 갈 것이다 ! 껍질이 벗겨져서 죽은 사람은 없으니 다른 심한 부상
만 없으면 나는 갈 것이다. 가자 ! 가자 !! 어서 가자 !!! 그러나 이 정도의 약한 결심
으로 종단 622km 가 쉽게 열리리라고는 생각치 않았는데 불행하게도 이 예감은 맞아갔
다. 더 큰 고통이 , 더 큰 시련이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K 시인아,
나는 동료들로부터 내가 뛰면서 어느 구간이 제일 힘들었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그러면 나는 지체없이 말하길, 주자 확인지점 혹은 급수대 불과 2 - 3 km 전방이라
고 말한다. 이 거리는 이미 주자가 한계에 와 있는 200km, 300km 구간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고통을 수반한 지금까지의 거리에 대한 반대급부로 주자가 바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다음 급수대에서의 울트라 동료들로부터의 따뜻한 악수, 격려, 웃음 그리고
따끈한 국물, 여기에 한 가지 더 바란다면 신발을 벗겨주고 차가운 얼음에 발을 담가주
는 그런 봉사일진데, 아 조금만 가면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합법적으로 내 지금
의 달리기에도 휴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얼마 안 남은 주자 확인점, 급수대를 목이
빠지게 고대해 보며 방금 지나간 코스도를 보고 또 보지만, 항상 이 급수대는 생각보다
더 멀리 있다. 불안하게도 이 급수대는 오늘 사정에 의해 폐쇄되지나 않았는지 하는 할
필요가 없는 걱정도 때론 하게 된다.
300km 주자 확인점, 급수대를 기다리던 내가 그랬다. 정말로 지쳤다. 눈은 저절로 감
기고 두 다리는 질질 끌렸다. 맥없는 두 팔만 앞뒤로 열심히 흔들어 제껴보지만 앞으로
의 전진은 너무도 초라하였다. 오, 급수대는 어디인가? 비닐로 코팅해서 뻣뻣한 종단
루트 설명서를 보고 또 보고, 이제 정말 저 모퉁이만 지나면 있을 것 같던 연맹의
텐트는 도대체가 보이질 않는다. 내가 허깨비를 본 것인가? 내가 길을 잘못 든 것
인가? 이 구간 따라 앞, 뒤 사방을 훑어보아도 같은 동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러길 거의 한 시간 여, 내 육신이 고대하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으로 인내심이
바닥을 칠 때, 그제서야 내 존경하고 사랑하는 동료들의 삘건 울트라 유니폼이 한 둘
보이기 시작한다.
오메, 저기가 거긴 갑네. 목이 빠지라 기다리던 내 쉼터. 지금 이 순간 나를 제일 잘
이해 해 주고, 내가 어느 상황인지 이 세상 천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아주는 내 가족
과도 같은 울트라 동료들이 있는 곳, 나는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봉사요원들의 따듯한
박수를 받으며 내 몸을 시체처럼 바닥에 굴렸다. 그러나, 그러나.. 나는 그래서는 안
됨을 알고 있다. 여기서 한 번 주저앉으면 다시는 못 일어날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 양말을 벗고 발에 아이싱을 하라는 권유를 손사레로 물리쳤다. 그리고 간단한 국
밥 한 그릇으로 허기를 면하고 그냥 그곳을 지나쳤다. 왜냐면 나는 내 발이 이미
정상이 아니고, 발가락 사이 마다마디가 불어 터져서 진물이 찔꺽찔꺽 나 발과 양말이
한데 엉겨붙어 떡이 되어있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이 양말을 벗으면 이제 영원히 갈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갔다. 아마 내가 완주를 하려면 골인 지점까지 이
양말을 벗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하기로 독하게 마음먹었다.
K 시인아,
어설프게 무장한 내 결심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 종단 울트라 마라톤 대회를 신청하며
출사표를 적는 칸에 나는 이렇게 적었었다. 오, 아름다운 내 조국 ! 그렇다 ! 내 조국의
구석구석을 내 두 발로 밟는다는 게 무슨 큰 축복인양 나는 그렇게 썼다. 그러나 조국은
아무나 그렇게 섣불리 거들먹거리는 단어가 아니었다.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능력
이 있는 사람만이 조국 사랑의 단어를 사용할 수가 있다. 내가 쉽게 뱉은 조국 사랑의
대가 지불이 지금부터 시작되었다. 대전을 통과 하고나서부터 직선화 도로를 따라 신탄진
, 청원, 청주, 음성, 충주 400km 주자 확인점에 이르는 긴 구간은 정말로 지옥으로 가는
길이었다.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뭔지 모를 서러움으로 흐느끼다가, 훌쩍거리다
가, 다시 목을 놓아 울었다. 내 자라며 당한 모든 서러움이 한꺼번에 다 새김질해서 내
달리는 두 발 앞에 놓였다. 그러면 나는 울면서 그 서러움을 밟았다. 발가락 마디마디 상처
는 초 단위로 나를 괴롭혔다. 쏟아지는 졸음에 나는 동물적으로 내 몸을 뉘일 장소를 찾
았다. 길옆의 허름한 카 센타 건물의 미닫이 창문을 밀어보니 잠겨지지 않았다. 이층의
주인이 금방이라도 방망이를 들고 내려와 나를 후려칠 것 같은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
지만 나는 이미 검게 기름때 묻은 합성수지 소파에 몸을 뉘이고 있었다. 보름날 쥐불놀이
할 때 다 탄 볏단 쓰러지듯 그냥 쓰러졌다. 불안해서 서울의 아내에게 한 시간 후 전화로
날 깨워달라고 하고 그냥 쓰러졌다
K 시인아,
그렇게 쓰러지면 밤새 잠을 잘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완주에의 강한 의지때문일까?
내가 마음먹은 그대로 한 시간 이상은 자지 않고 50 여 분이 지나자 나는 깨어졌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일어나 다시 가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전화를 했다. 아내는
그렇쟎아도 깨워야 할 시간이 다가와 깨워야할 지 더 자게 놔둬야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또 다시 신신 당부를 한다. 그만큼 간 것도 정말 대단한 것이니 힘들면 이제 고만
하라고 한다. 그러마라고 했지만, 나는 이미 완주선에서 두 팔을 벌리고 들어가는 나의 모
습을 내 가슴에 칼로써 문신을 새기고 있었다. 극심한 고통으로 심약해진 상황에 아내랑
통화를 하니 또 다시 눈물이 난다. 아니 대성통곡이 인다. 어찌된 일인지 나랑 같이 뛰
던 일군의 모든 주자들도 다 어디로 갔는지 한 분도 보이지 않아 나는 맘먹고 울었다.
그러고서 다시 뜀을 시작하며 구호를 만들어 붙였다. 무릎 보호대에 검정 매직으로 쓴
아내와 아들 이름을 번갈아 부르며 최면을 걸었다. 오직 전진만을 위한 최면을 걸었다.
왼발에 “ 영희야 ! ” 오른발에 “종화야 ! ”, 영희야, 종화야 ! 영희, 흐흐흑 !! 흑흑 !!
또 다시 터져 나온 통곡으로 구호가 멈춰진다. 아, 진짜로 고통스러운 순간들의 연속이다.
길 옆 가드레일을 붙잡고 쪼그려 자세를 취해본다. 근육이완 자세다. 그렇게 한 참을 쪼
그려 있으면서 감정을 추스렸다. 뒤따라오던 일군의 주자들과 만났다. 한 동료가 말한다.
울어 ! 울어라고 !! 더 크게 울어 !! 그것 가지고는 안돼 !! 더 울어 !! 그러자 내 울음이
멈췄다
K 시인아,
이것만으로 내가 섣불리 되뇌이던 조국 사랑의 대가가 다 지불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것은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몰다우, 서막 중 서막이었다. 400km 에서 500km
로 이어지는 충주에서 홍천 구간의 잔혹함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었다. 아니, 아마
절대적 고통은 같을지 모르나 누적된 피로, 쌓여가는 수면 부족으로 인한 피로도가 곱제곱
으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450 km 주자 중간 확인 지점인 원주시내 모처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같이 달리던 동료들로부터 처음 들었다. 이미 포기 하거나 탈락한 주자가
50 여 명이나 된다고 들었다. 무서웠다. 내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소름이 끼
쳤다. 그리고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위치가 중간에서 상위 정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 그렇구나. 마라톤은 정말 정직하다. 울며불며 고통을 참고, 불어 터진 발바닥을 질질
끌며 계속해서 달려온 결과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내가 처음 나 혼자 마음먹은 게 있다.
가자 ! 포기만 하지 말고 가자 ! 체력이 안 되어 중간 탈락 되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지레
포기는 말자. 중간 통과 시간을 어겨 탈락 되더라도, 그리하여 배번을 회수 당하더라도
그냥 가자, 끝가지 가자... 나 혼자라도 가자! 작년 537 km 종단의 경험이 있쟎은가?
도중에 포기해서 나 혼자 나머지 구간을 달릴 때 뼈저리게 느끼었던 그 때의 그 고독감을
알고 있쟎은가 ? 무엇이 더 두려울건가 ?
그 당시 섣불리 포기를 하고 지난 일 년 여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내 자신의 경거망동
에 후회를 했던가. 대회 포기가 후회스러웠던 게 아니었다. 그렇게 내린 내 결론의 속도
에 후회를 했다. 살면서 신중해야 할 순간에 오히려 더 신중치 못했던 그 조급함에, 신중
해지면 복잡해지는 그 결론에 대한 무서움, 두려움에 대한 회피 자세에 후회를 했다.
내 방 곰보 유리창에 써 놓은 매직 글씨가 있잖은가? 성공, 그것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 그 곳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이다. 그렇쟎은가? Success is not a destination
but its long journey. 그러면 완주가 목표가 될 수 없다. 그곳에 이르는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뜀이 곧 성공이쟎은가?
K 시인아,
500 km 를 넘으면서부터는 잠깐 쉬었다가 다시 뜀을 시작하려면 비명부터 먼저 나왔다.
발이 문제였다. 신발 속에서 그동안 진무르고 곪은 발가락 상처가 미끈덩거렸다. 대회가
끝나면 발가락을 절단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어이 하랴,
나는 완주를 해야한다. 목표가 너무 뚜렷하다. 완주. 고성 통일 전망대 출입국 관리소
앞 주차장 완주선에서 우아하게 두 팔을 벌리고 들어가야한다. 무엇이 날 그렇게 내 몰고
있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목표는 딱 그것 한 가지다. 다른 것은 일체 생각을
말자. 그래, 그게 좋겠다. 그러려면 가자, 어서 가자. 발가락 한 두 개 버리더라도 가자.
내가 지금껏 살면서 이런 정도의 끈기와 오기와 집념이 없어서 요모양 요꼴이지 않은가?
지금부터라도, 아니 지금 당장 한 번이라도 나에게 이런 오기가 있음을, 이런 끈기가 있
음을 나 자신에게 한 번 보여줘 보자, 그래 못 할게 뭐 있나? 나는 다시 한 번 허공을
향해 소리를 디립다 질러댔다. 대상은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의 유관순 누나 손톱을 빼며
고문하던 쪽발이 왜넘은 들어라! 때 되면 씨 뿌리고 농사지어 식구들 건사하던 순진한
우리 백성들, 봄 되면 꽃 피고 여름되면 골짜기 맑은 개울물 졸졸 흐르고 가을이면 만산홍
엽 아름다운 이 강산을 유린했던 오랑케들은 들어라, 이 개 시볼넘들아 ! 내가 그리 약해
보이더냐, 내 민족이 그리 만만해 보이더냐, 이 개 시볼넘들아 !! 넘들아, 넘들아 !!!
K 시인아,
500 km 주자 확인점을 통과하고 또 다시 밤이 찾아왔다. 이 밤을 넘기려면 우선 내장을
채워야한다. 주로에서 단 일 미터를 벗어났다 다시 주로로 되돌아온다면 이는 신중한
판단을 요하는 중대한 사항이다. 그만큼 주자들은 지쳐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경 200
여 미터를 들어가 신남면 이라는 조그만 읍 소재지로 들어갔다. 늦은 이 시각 이곳 말고는
식사를 할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얼이 반 이상 나간 상태인가 보다. 자원봉사
자로 늦은 이 시각 주로를 돌며 주자 상태를 파악하던 박연호님이 나를 붙잡고 고래 고래
소리 지르며 나를 두 번 세 번 다짐해 준다. “ 네 ? 알았지요? 저기 저 밑 신남면 읍으로
내려가서 꼭 식사하고 가셔야 돼요, 네, 알았지요? 식사하고 내려간 이 길로 다시 올라와서
다시 또 국도 따라 가셔야 돼요? 알았지요? 다시 한 번 더 이야기 해 줄께요, 네 ? 그냥
그 길로 곧장 가면 큰일나요, 네 ? 괜찮겠어요 ? 지금 괜찮아요? “
박연호님은 나를 초등학교 입학식 날 앞가슴에 콧수건 달고 앞으로 나란히를 하고 선 학생
취급을 하였다. 그만큼 나는 얼이 빠져있었다. 나 뿐만 아니라 이 가근방을 지나가고 있는
모든 주자들이 그런 상태이었다. 그렇기에 대답이라도 제법 똘방똘방하게 하고 있는 나를
두고 그 분은 또 다른 주자를 위해 쌩 ! 어둠 속으로 차를 몰았다.
어그적, 어그적 극심한 허기로 내 내장을 채워줄 식당을 찾았다. 국밥집 한 곳의 불이 켜져
있었다. 몰골이 말이 아닌 내가 드르륵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주방의 아줌마가 막
주방의 형광등을 끄고 문닫으려고 하다가 나를 보고 돌아선다. 손에 물기를 다 �지 못하
고 손을 들어 불을 끄려고 하니 손끝의 물 한방울이 팔뚝을 타고 흘러 내렸는지 그 아줌마
는 다른 한 손으로 그 팔꾸머리 물방울을 훔치는 몸짓을 한다.
아줌마, 밥 좀 주세요..
나는 거지였다. 내 체면으로 그렇게 밥 좀 달라는 소리는 분명 농담과 함께 상대방으로 하
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분위기에서 나올 말이었다. 그러나 이건 웃기는 소리가 아니었
다. 매우 심각한, 뛰기 위해 주자가 허기를 면해야하는 아주 심각한, 절대절명의 간구였다.
다 치워서 맨 밥밖에 안 된다는 아줌마였지만 지금 내가 무었을 하고 있는지 조금씩 이야기
를 풀어놓자, 이 아줌마는 치웠던 솥에 국물을 다시 넣고 금방 국밥 한 그릇을 만들어 주었
다. 그러나 나는 이 밥을 다 먹지 못했다. 넘어가지 않았다. 2 년 전 제주도 일주 200km
울트라 마라톤 당시의 그 상황과 비슷한 음식 거부증세가 나타났다. 그래서 속을 달래려고
이 아줌마와 조금 더 대화를 시도했다.
그 아줌마는 날 아주 요상하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치부하고 말을 많이 걸어왔다. 등받이가
동그란 싸구려 밤색 플라스틱 의자 위에 한 쪽 맨발을 올리고 나머지 한 발은 신발을 벗어
그 위에 걸쳐놓고 나와 대각선으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골 읍네 국밥집 아줌
마치고는 예의를 아는지 웃을 때 형식적으로나마 손바닥으로 자기 입의 치아를 가렸다. 아
줌마는 이제 내가 어느 거리를 어떻게 뛰고 있는지 조금 이해가 되는지 이렇게 물었다. 그
럴 것이다. 전남 해남 땅끝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무박 무지원 150 시간
622km 울트라 마라톤, 그 누구라서 그 전부를 담박에 알 수 있겠는가? 아줌마가 의자 위
로 말아 올린 자기 왼발의 무릎에 턱을 대고서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 그란디, 왜 그렇게 뛰세요?? ”
K 시인아,
나는 왜 뛰는가 ?
오랫동안 난 이 질문에 대해 멋진 대답을 만들어 보려고 생각했다.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등정한 힐러리 경이 만들어 낸 유명한 말, 거기 산이 있으니까요, Because it's there !
그러면 나라고 이렇게 멋있는 말을 못 만들라는 법이 없다. 그러나 말은 머리로 만들어 지
는 게 아닌가 보다. 아직도 미천한 울트라 경력이 그처럼 위대한 철학을 받혀줄 리가 없다.
그러나 만일, 내가 대한민국 종단 622km 이 대 장정을 멋있게 마무리진다면, 그리하여 그
전 여정을 곰씹어보며 무엇인가를 한 가지 터득할 수 있다면,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려면 완주를 해야 된다. 완주를. 이 우라질 완주를... 이렇게
이를 한 번 부드득 갈고 남은 음식을 우겨 넣었다. 내일 아침까지 달릴 수 있는 에너지를
생성시킬 불쏘시개를 내 아구리에 쳐 넣었다. 그리고 일어섰다. 다시 뛰는 폼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를 그 아줌마는 미닫이 창틀을 붙잡고 서서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를 더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그 때 까지 그 아줌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 팔로
는 풍성한 두 젖가슴을 받치고, 그 받친 팔위에 왼팔을 뻗어 니은자를 만들어 손바닥으로
왼쪽 턱과 볼을 감싸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 웃지는 않는지 하얀 치아는 보이지
않았다.
K 시인아,
얼마를 가니 중간에 버스 정류장 여기 저기에서 널부러져 토막잠을 자던 동료들 몇을 만
났다. 그래서 밤길이니 같이 가자고 해서 4 명의 주자가 한 무더기가 되어 밤길을 달렸
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몇 몇 주자가 졸음을 호소해 길가 동네의 정자에서 시체같은 몸뚱
이를 눕히고 20 - 30분 토막잠을 잤다. 그리고 또 달렸다. 오늘이 엿새째, 이제 마지막
날이다. 만일 나에게 힘이 남아 있다면 그 힘을 다해 600km 주자 확인점까지 달릴 것이
다. 그리고 이제는 남은 힘이 있던 없던 마지막 22km 를 달릴 것이다. 거기서야 없던 힘
도 나오지 않겠는가? 장장 600 km 를 뛰어 왔는데 그 나머지 22 km 를 못 간다면 말이
아닐 것이다. 인제를 벗어나 진부령을 향해 4 - 5 명의 주자 한 무더기가 한참을 뛰어
간다.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이 없다. 지금 이 순간 각자의 머리속 생각들이야 얼마나 많겠
는가, 그러나 모두들 말을 잃었다. 아니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지침을 받은 노예처럼 말
동작 자체를 시도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 침묵을 깨는 사람들이 있었다. 갑자기 어디에
서 나타났는지 경광등을 번쩍 거리며 경찰차가 다가오더니 마이크로 말을 한다.
인도, 갓길로 들어서세요.. 갓길로.. 위험합니다. 지금 가지 말고 거기서 쉬었다가,
조금 있다가 날이 새면 뛰던지 하세요!
우린 모두 소릴 내지 않고 웃었다. 누군가가 별 186 같은 소릴 다 듣겠네 ! 라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거기서 쉬었다가 날이 새면 뛰라는 경찰의 제의는, 6 일 전 해남의 땅끝 마을
을 출발하고 나서 6 일 만에 처음 들어 보는 웃기는 소리였다. 조금 있다가 날이 밝으면
뛰라고? 우리가 지금 뭐하고 있는 줄 알기나 하고 하는 소린가? 그러자 그 경찰차가 우리
옆으로 다가와 창문을 열고 한마디 한다. 우리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사고 난 것 모르세요? 오늘 새벽 주자 한 분이 차에 치인 것 모르세요? 그 자리에서
죽었단 말이오.
K 시인아,
우리 같은 주자는 어지간해서는 대화중에도 뜀을 멈추지 않는다. 뒤에서 따라오는 각 구간
별 제한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째깍째깍 초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다섯은 모두
그 자리에 섰다. 그리고 그 경찰에게 물었다. 아,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다. 우리 모
두 서로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바로 우리가 그렇게 그런 상태로 지나온 길에서 희생자
가 생겼다는 것이다. 갈 지자, 그것도 아주 심한 갈 지자로 바로 전 내가 지나왔던 그 길에
서 동료 한 명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차로로 뛰는 바람에 차에 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으로 실려가 지금 치료중인 것도 아니고 거기서 그냥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300km 이 후 구간을 넘어서면서 나는 수 없이 보아왔다. 주자가 졸음을 이기지 못해
길가 여기저기에 널부러져진 현장을 보아왔다. 나 또한 그런 모습이었으리라. 길가에 제법
그럴싸한 가건물이 있거나 정자가 있거나 아니면 밤이슬을 피할 수 있는 바람막이 칸막이만
있으면, 맨 땅의 습기가 올라오지 않을 만큼의 깔개만 있으면 주자들은 그들의 몸을 그곳에
던져 버렸다. 수마는 정말 잔인했다. 그것은 외부 어디 어느 방향에서 쳐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그냥 눈썹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아지 못하는 주기를 가지고 주자들을
괴롭혔다. 여간해서는 차도와 인도의 경계석 층계에 몸을 의지하고 쉬는 자세를 취하지
않는 나였지만, 너무도 극심한 피로로 바로 그곳에 멍하니 앉아 몇 분의 휴식을 취했던
조금 전 내가 생각나자 갑자기 무서워졌다.
주자들이 걷는다. 누가 어떻게 하라고 해서도 아닌데 우리 주자 다섯은 일렬로 걷는다.
그리고 앞에서 달려오는 차량들을 향해 손사래를 위에서 아래로 친다. 오, 제발, 좀 천천히
오세요.. 제발 좀 너무 가장자리로 붙어서 오지 마세요. 우리는 지금 달리고 있습니다.
6 일째 달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내게 덮쳐오면 우리는 피 할 힘도 없습니다. 오 , 제발
천천히 좀 달리세요... 제발.. 우리랑 같이 뛰던 동료 하나를 친 여러분, 제발 좀 천천히
오세요.. 우리는 정말 당신들이 무섭습니다. 대한민국 무법천지 운전자들, 당신들이 무섭
습니다요... 앞에서 다가오는 차량들에 대한 적개심이 요동을 쳤으나 이를 발산 할 힘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냥 계속해서 손사래만 치면서 앞으로 전진을 계속했다.
K 시인아,
본격적으로 진부령 고개를 향해 넘어가는 왕복 2 차선 국도를 우리는 떨면서 걷고 있다.
동료 주자 5 명이서 무거운 침묵을 짊어진 채 땅만 바라보고 걷고 있다. 뛸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 주자는 뛸 마음이 없다고 저만치 그 자리에 서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어느 여성 주자는 변을 당한 그 주자를 생각해서 더 이상 뛰면 안 될 것 같기에 그 자리
에서 그냥 뜀을 멈추고 조직위에게 배번을 반납했다한다. 희생자가 나온 이 마당에 내가 계
속 뛰어야 하는지 멈춰야 하는지 잠깐의 생각이 있었지만, 그 해답을 더 이상 구하지 않았
다. 맨 앞에 선 주자가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결론을 내렸는지 모르지만 서서히 뛰기 시작
하자 그 뒤의 무리인 우리도 그냥 뛰기 시작한다. 아무런 생각없이 뛰기 시작한다. 눈감고
설잠을 자다가 젖을 갖다 물리면 금방 본능적으로 빨아대는 젖먹이 아이처럼, 우리들 그
누고도 뛸까요? 라고 묻지 않았고, 대답도 없었지만, 거의 본능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이 대회 마지막 오름길 진부령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갈 가의 가장자리 갓길을 표시한
기다란 백색 실선을 따라 뛰기 시작한다. 날은 이제 훤하게 밝았다. 지나간 긴 긴 밤, 들
고 있는 플레쉬가 만들어내는 조그만 불빛 원형에 12 시에서 6 시 방향의 긴 백색 실선만
을 따라 부나비처럼 장장 6 일째 뛰고 있는 주자들, 그들의 머리는 이제 완전히 비워져 있
다. 왜 뛰는지, 지금은 종단 루트의 어느 지점에 와 가는지, 오늘이 몇 요일인지 다 까먹고,
밤에는 플레쉬 불빛에 비친 갓길 표시 백색 실선을, 낮에는 여길 보고 그냥 달리기만 하라
는 작전명령 지도처럼 그냥 갓길 표시 그 백색 실선만을 �아 부나비되어 뛰고 또 뛰었다.
K 시인아,
600km 주자 확인점에 도착했다. 발바닥은 무를대로 물러 터져 참혹했다. 신발 속에서 진
물이 고여 발가락이 물커덩 거렸지만, 이제 두려움은 없다. 이제 완주의 가시권에 진입했다.
발바닥 고통 ? 아무것도 아니다. 잠 ? 아무것도 아니다. 완주에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지금 모든 것은 이제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러나 종단 622km , 1,555 리 마지막
22 km 도 그냥 그렇게 가볍게 갈 마라톤 하프 코스는 아니었다. 600km 주자 확인점
에서 우리 울트라 마라톤의 많은 동료, 특히 너무나 훌륭해서 내가 감히 그 옆에 가기도
어려워하는 윤왕용님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주로에 다시 서 마지막 힘을
쏟고 또 쏟았지만 나는 22km 라는 이 짜투리 거리를 뛰는데 4 시간 52 분의 사투를 벌려
야 했다. 몸이 나가지 않았다, 몸이... 이는 아마, 지금부터 걸어가더라도 완주 제한 시간
내에는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안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말로 나는 지쳐 있었다. 이 지친
상황으로 계속 간다면 8 시간이 더 걸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이 반갑지 않은 예
상을 깨는 일이 벌어졌다.
나 떠나온 집에서 6 일 동안이나 나의 안위 때문에 노심초사 애간장을 끓이고 있던 아내와
아들과 동생이 급히 차를 몰고 서울 집을 출발, 완주선을 향해 가다가 나를 만났다. 우리들
은 모두 부둥켜안고 도로 한 쪽 귀퉁이에서 울었다. 금강산으로 가는 7 번 국도 표지판에서
엉엉 울었다.
아내는 말했다. 이게 무엇하는 것이냐고... 글쎄 대답을 원하는 질문은 아니었으나 나도
또한 잘 모르겠다. 내가 지금 무엇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햇볕에 그을러 구릿빛처럼
되어버린 팔뚝을 아내는 쓰다듬어 주더니 급히 준비해온 죽을 한 통 건네준다. 나는 허기
로 달달달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해가며 숟가락을 입속에 넣다말고 물었다. 이것 몇 통 가
지고 왔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많이 있으니까 더 먹으라고 말하며
또 다시 눈물을 훔친다. 내 몰골을 볼 때 마다 눈물이 나는 모양이다. 나는 말했다.
영희야, 내 뒤에 오는 다른 주자있으면 그것 좀 드려. 그 양반들도 배고플테니까 좀 드려,
많이 드려... 그 양반들 정말로 훌륭한 분들이야, 정말로 훌륭한 분들이야. 울트라 하는 분
들 정말로 대단하신 분들이야....나는 죽 그릇을 들고 있는 손이 힘이 없어 덜덜덜 떨면서
헛소리 비슷하게 이 말을 반복했다. 아내가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오면 드릴테니까
어서 먹어요.. 천천히.. 천천히.. 그러면서 아내는 내 턱밑의 수염에 걸린 밥 알 하나를 손
으로 떼어 땅바닥에 버리는데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다. 그냥, 그냥 불쌍한 사람
취급이다. 조금 정신이 들자 나는 아내와 아들과 동생에게 말한다. 이렇게 중간에서 먹
을 것 주면 규정 위반이니 그냥 완주선에 가서 기다리리라고 말했다. 가면서 힘들어 하는
주자 있으면 먹을 것 좀 드리고, 힘내시라고 응원 하면서 가 있으라고 말했다.
K 시인아,
지금부터는 이제 내 시간이다. 나는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해남에서 출발 하
면서부터 가지고 왔으나 단 한 번도 사용할 엄두도 못 냈던 MP3 재생기를 꺼내 귓가에
꽂았다. 근처 식당 화장실에 들러 간단히 세수도 했다. 그리고 남은 거리 약 10 km 를
달려갔다. 아니 달려간 게 아니다. 앤디스 산 해발 5,000 미터 상공의 콘돌새 처럼 고공
기류를 타고 활강하듯, 느긋하게, 네 활개를 다 펴고 마음껏 여유를 부리며 통일 전망대 앞
으로 몇 km 라고 씌인 도로 표지판을 따라 클래식 음악을 즐겼다. 들고 있던 종단 루트 설
명서 마지막 장을 길 가 도로변으로 미련없이 던져 버렸다. 던지면서 지나 온 길, 나랑 같
이 300 여 km 를 같이 뛰면서 주로를 끊임없이 알려주고 달리는 속도를 확인해 주며 외로
운 밤길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나의 울트라 동료 진정화님에게 감사를 했다. 그리고
후 종반길에 나랑 함께하며 외로움을 잊게 해 준 유영대님, 이 한기님 그리고 완주에의
확신을 힘주어 주지시켜준 정동숙님, 한 번도 힘든 종단 길을 두 번이나 달리면서 나에게
자신감을 주신 신원기님, 지해운님, 아, 나는 이 분들이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할 종단 완주
그 마지막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너무 고마워 눈물이 저절로 줄줄 흐른다.
저기 완주선 아치가 보인다. 2007 년도 한반도 종단 622 km 라고 쓴 디긋 자 대형 막대
풍선 밑에 기다랗게 빨간 카펫이 보인다. 길가 도로변 어디선가에서 꺾어서 들고 있는 들
꽃 몇 송이, 아내의 조그만 손에 들려있다. 아, 이제 정말 다 왔다. 나는 두 팔을 양쪽으로
힘껏 뻗었다. 그리고 한 마리 콘돌새가 그러듯 구름 위 창공 유영을 시작했다. 내가 바라던
날으는 새의 자유, free as a bird 공연을 시작했다. 총 도전자 147 명, 완주자 83 명 중
31 위, 145 시간 02 분간의 먹이 사냥을 끝내고 완주라는 먹이를 내 발밑에 깔고 이제 막
어둠이 내려앉는 하늘을 향해 길게 포효했다. 아내 이름 “ 영희야 !!! ” 를 목이 터져라고
외쳤다. 그리고 내가 종단길 내내 내 가슴 속에서 품고 있었던 화두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성취감, 내 조국 대한민국의 남쪽 땅끝에서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의 장장 622km 를 내 두 발로 구르고 밟아 여기에 이른 지금 이 순간, 아 !
비록 몸은 만신창이 되었으나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내 영혼을 대변하는 딱 한 마디를
생각해 냈다. 달리는 내내 고통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달리기 그 자체의 기쁨을 표현하고
싶었다. 앞으로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 당신은 왜 뛰나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왜냐면, 왜냐면..... 달리면 이렇게 그냥 좋으니까요...
“ Because, it pleases me. ”
춘포
박 복진
+ 대한 울트라 마라톤 연맹에서는 ‘07 한반도 종단길 622km 중 546 km 지점에서 불의
의 사고로 완주의 꿈이 접히신 고 안봉현님의 뜻을 기리고자, 오는 8 월 4 일 고인의
영정을 들고, 40 명의 울트라 동료가 나머지 76 km 를 완주하는 추모 달리기를 시행
합니다. 동료들은 종단길 622km 끝 완주선에서 고인의 영정에 명예 완주증을 수여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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