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서울국제동아마라톤대회 김성림씨의감동의 수기를
읽다가 너무 감동받아 다시 이곳에 올립니다.
이분의 역주 찬찬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새벽 다섯 시 십분!
여명조차 기침소리를 감춘 3월 12일 결전의 날 아침이 서서히 밝아온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며 12시를 넘겼던 어젯밤의 잠자리였으니 고작해야 다섯 시간정도가 42.195km의 대장정에 나설 파발마의 잠잔 시간이다.
밖의 기운을 느끼려 복도에 나간다.
적막 속에서 불어오는 을씨년스런 바람이 모든 걸 삼킬 듯이 우악스럽다.
이내 몸서리치며 방구석으로 쫓겨 들어온다.
꽃샘추위는 왜 하필이면 이때에 찾아오는지.
어제까지 영상이었던 최저기온이 오늘아침에는 한파주의보까지 몰고 오면서 영하 5도를 기록한단다.
만만치 않은 하루가 될 것 같다
미지근한 물의 샤워로 잠자고 있는 몸을 깨우는 것도 오늘 내 목표인 3시간 40분대의 페이스메이커에 나서는 최팀장께서 내게 전수해 준 노하우다
모처럼 놀러와 큰오빠의 파이팅을 위해 새벽잠을 깨워 찰밥을 해준 여동생이 고맙다.
두툼한 빵모자를 눌러 쓰는 것을 끝으로 복장점검 끝 드디어 출발!!
지하철 3호선에는 인력시장에 나가는 일꾼들 모양을 한 달리미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오늘의 기록요리에 여념이 없다.
내 모습을 보고 건너편에 앉아 있는 한 아씨가 씨익 웃어준다.
“안녕하세요 ?” ‘척보면 앱니다, 당신들도 모두 마라톤 중독자들이지?’
도착한 시간이 일곱 시를 조금 지났지만 출발하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조급한 마음에 이내 광화문으로 나가보니 광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로 이내 눈이 휘둥그레지고 호흡까지 빨라진다.
상공에는 방송중계사의 헬기가 출발을 독촉하며 굉음을 울린다.
오전 8시!
오색 축포와 함께 심장을 빼닮은 빨간 풍선이 하늘을 수놓으며 올해로 일흔일곱 돌을 맞는 그 녀석의 잔치가 시작된다.
출발~~~
‘잘들 가시오, 내 그대들이 달린 길을 단 1m도 깍지 않고 다 달리 리다’
외국과 국내 엘리트 초청선수들이 출발하고 내가 속해있는 C그룹의 출발 시각은 정확히 19분 뒤인 8시 19분.
다섯, 넷, 셋, 둘, 하나, 출발!
출발소리와 함께 우리에 갇혀있던 망아지들 마냥 뛰쳐나가는 마라토너들의 발굽소리가 광화문광장의 지축을 뒤흔든다.
때 늦은 영하의 차가운 날씨도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선수들의 거친 호흡소리를 감히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다.
조금 달리자 좌회전을 해야 할 숭례문이 내게 자리를 양보해 준다.
달린다기보다는 차라리 무리에 휩싸여 밀려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초반 레이스는
지난겨울 나름대로 열심히 훈련한 내겐 숨소리 까지 죽일 수 있도록 배려된 완벽한 시간이다.
을지로 반환점과 시청을 돌아 지난 해 서울시민의 젖줄로 새롭게 태어난 청계천의 시원한 물줄기가 추위에 얼어붙은 건각들을 반갑게 맞아준다.
그렇게 그렇게 42키로미터의 대장정은 시작되었다
‘좌측심실 비대증’, ‘심전도 T파 상승, ST파 이상’ “검사를 받아보아야 정확히 알겠지만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이나 이환 위험증가의 표식일 수 있으니 검사를 해 봅시다”
매년 한 차례씩 해 오던 건강종합검진결과가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내게 비수를 들이댄다.
동마대회를 위해 지금까지 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며 얼마나 혹독하게 몸뚱이를 내굴렸던가.
정확한 검사가 이루어 지지 않아 판단을 할 수는 없지만, 이대로는 달리건 위험하다는 담당의사의 말이 뒤통수를 내리친다.
추위에 떨며 달려온 지난겨울, 오늘을 향해 수 천리 길을 달려온 고단한 몸뚱이에겐 검진결과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조차 꺼내기가 두려울 뿐이다.
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함박눈 속에서 동호회원들과 함께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는데.......
얼마를 달렸을까. 고산자교를 돌아 청계천 반환점을 뒤로하니 어느 정도 몸이 풀렸는지 조금까지만 해도 차갑던 바람조차 시원하게 느껴진다.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를 자원하신 같은 동호회 최팀장님의 부지런함이 달림이 들에게 힘을 실어 준다. 달리면서 붙여주는 구령은 물론이요 스트레칭에다 허기져 있는 어린 양들의 입속에 건포도 까지 챙겨 넣어 준다. 이런 고맙기고 하지. 50kg안팎의 외소한 체격에 몸집보다 큰 풍선까지 매달고 달리면서 어디서 저런 힘이 나는 것인지.. 페이스메이커협회 대표이사 출마하면 건포도 숫자만큼 얻은 표만으로도 당선자 사진에 무궁화 꽃을 꼽아주기에 충분할 듯싶다.
대회 전 까지는 검사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병원 측에 막무가내로 금요일 오후에 결과를 볼 수 있도록 약속을 받아내고 검사를 받기로 했다. 도살장 가는 날 잡아놓은 비육우 모양으로 별의 별 생각들이 그렇잖아도 복잡한 머리를 더욱 괴롭힌다. 생전에 단 한차례도 해보지도 않은 CT에 혈관조영검사까지 큰 대회를 치룰 메인 선수(?)에게는 세심한 배려임에 틀림이 없다.
청계천을 빠져 나오니 넓은 대로라 달리기가 훨씬 수월해 진다.
목포에서 올라온 아가씨 같은 아줌마가 열기를 참지 못하고 윗옷을 벗어 던지자 주위에서의 격려와 장난 끼 섞인 함성이 지친 몸을 달래준다
이렇게 하나 둘 벗다가는 30키로 쯤 가면 알몸이 되고 말텐데....ㅋㅋㅋㅋㅋ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밀듯, 조금 전까지 뭉쳐 달리던 선수들이 흩어져 4차선을 가득 메우며 달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어린이 대공원 앞을 지나 어느덧 마의 30키로미터를 향하는 언덕이 내게 첫 번째 테스트를 걸어온다.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며 페이스메이커의 녹색풍선이 빠르게 달아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페이스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저앉을 수 는 없다. 이를 악물고 따라가 본다. 여기서 쳐지면 세 번째 도전인 3:40분대는 물 건너간다. 젖 먹던 힘까지 내서 페이스메이커 옆에 바짝 붙어 긴 안도의 한심을 내쉬어 본다. 줄곧 최팀장님 옆에 바짝 따라온 목포 아낙은 여전히 그 모습이다.
대회 전 주 금요일, 그러니까 3월 10일 검사결과를 기다리며 만감이 교차하는 초조한 시간!
10여 일 간이나 마음을 졸이며 끌어온 재검 결과는 ‘이상 무’라는 간단한 소견으로 시시하게 끝나버렸다.
휴우~~~ 그동안 속을 태운 것을 생각하면....
조금 전 언덕을 치고 올라오며 무리한건지 왼쪽 허벅지가 조금씩 뻐근해 온다.
32키로미터를 통과하며 손목시계를 보니2시간 36분,
손목에 차고 있는 시간분배표에 정확히 맞춰 달려온 것이다.
조금 전 뻐근했던 다리통증이 좀더 심해진다.
쥐가 난다.
잠깐 멈춰 서서 허벅지를 주물러 보지만 예사롭지가 않다.
그사이 녹색 풍선은 이런 나를 비웃 듯 10 여 미터 앞에서 바람에 흩날리며 요리 조리 까불어 친다.
안돼! 안돼!
멀어져 가는 풍선을 잡으려 절름발이를 하며 달려 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둘의 간격은 조금씩 벌어진다.
멀어지는 야속한 풍선을 향해 뻣뻣해져 가는 다리를 절며 얼마나 달렸을까..
아뿔싸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까지 말을 듣지 않는다.
조금 전 언덕을 치고 올라오며 무리한 것이 분명하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양쪽다리를 번갈아가며 주물러 보지만 고작 몇 발을 내딛고는 이내 주저앉기를 몇 차례.....
야속한 최팀장님의 녹색풍선은 야속하게도 내 눈앞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양쪽다리가 완전히 굳어져 이제는 걷기조차 힘들어 진다.
길 가장자리를 찾아 털썩 주저앉는다.
공기총을 맞고 앞다리를 구부려 커다란 몸집을 냉동댕이치며 최후를 맞는 도살장 비육우 모양으로 털석.
피를 뽑아야 한다.
출발 전 동호회원이 권해주어 윗주머니에 보관해 두었던 침을 찾아본다.
젠장 20키로미터지점에서 스포츠겔을 꺼내다 떨어뜨린 모양이다.
진행요원이 달려왔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옆에서 달려가는 무리를 향해 도움을 청하지만 내가 찾는 것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를 악물며 포기하면 안 된다고 수없이 다짐한다.
3시간 50분 페이스 메이커가 한 무리를 데리고 휘익 지나가 버린다.
햇살조차 들지 않는 얼어붙은 아스팔트바닥에서 그렇게 10분을 나뒹군 것이다.
덪에 걸려 발목이 잘려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한 가닥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몸부림치는 들짐승처럼 그렇게 10여분동안 몸부림을 쳤다.
최후의 선택으로 배번을 단 옷핀을 뽑아 들고 양쪽 허벅지를 미친 듯이 찔러 댄다. 탱탱하게 얼어붙은 살갗에서 선홍빛 피가 솟아오른다. 풍선이 사라진 주로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갑자기 울컥하는 무언가가 솟구쳐 오른다. 허벅지에 흐르는 핏물만큼이나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겨우 몸을 추스려 한 발짝 한 발짝 떼어보지만 이미 기회는 지난 것 같다.
온몸은 얼어붙었고 달리기 페이스는 이미 다운된 상태.
절망과 아쉬움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다시는 달리지 않으련다.
두 번 다시는 이런 미친 짓을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영원히......
이제라도 포기할까 여러 차례 생각해 보았지만 지금까지 달려온 거리가 아까울 뿐더러 앞으로 남은 20여리 길도 배추를 셀 때 쓰는 ‘포기’라는 단어밖에 모르는 나를 붙잡을 수는 없었다.
깁스를 한 것 같은 두 다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씩 움직일 때 마다 자지러지게 한다.
잠실대교위에 설치된 급수대에는 30센티나 되는 기다란 고드름이 오늘의 강추위를 말 해준다.
다리위에 주차되어있는 대회 운영버스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곤히 잠들어 있는 외국 선수의 모습이 무척이나 부럽게 느껴진다.
이제는 주로에서 열심히 응원해주는 운영요원들의 파이팅 소리도 가물가물하게 들려온다. 얼마 전까지 고막을 찢을 듯 요란하던 북소리며, 나팔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평소 같았으면 50분이면 충분히 달렸을 마지막 10키로미터를 1시간이나 넘게 달려왔지만 잠실운동장 지붕뚜껑은 보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덪에서 용케도 빠져 나왔지만 잘려나간 발목을 절며 어디론가 떠나는 외로운 들짐승과 너무도 흡사한 길고 긴 여정
그렇게 일(?)을 치르며 7키로미터를 달려 39키로미터 지점을 통과한다.
손목시계를 보니 3시간 40분.
목표시간도 이미 지났다.
그나마 앞으로 20분 내에 달려야만 오늘 달린 C그룹에 겨우 포함될 수 있는 성적이다.
양쪽 다리는 마비 된지 이미 오래다.
조금 더 달리니, 아니 정확히 말해 조금 더 걸으니 이제 사 잠실 주경기장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로 양쪽에 빽빽하게 늘어선 사람들의 응원소리도 이젠 아무런 힘도 되지 못한다.
눈도 멀고 귀도 멀고, 심장 박동소리조차 멎을 지경이다.
다리를 끌다시피 달려서 그토록 기다렸던 주경기장을 들어선다.
응원인파의 환호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또다시 코끝이 찡해 온다.
지쳐서 달려주지 못한 몸뚱아리가 야속하고 잘려나간 발목으로 달려온 지난 시간이 허무해서 마지막 남은 운동장 트랙을 달리는 내내 울고 또 울었다.
드디어 골~ 인~
휘니쉬 라인에서 일그러진 내 모습을 담아낸 카메라의 셔터소리와 함께 장장 3시간 59분 54초의 대본 없는 단막극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코미디계의 간판스타로 불리우던 김형곤씨의 죽음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게 느낄 수 있었던 단막극을 치루고(?) 건강의 소중함을 더욱더 뼈저리게 느껴본 대회였다.
그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 내 몸뚱이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2006 서울국제마라톤 대회’를 이제 한 페이지의 추억으로 떠나보낸다.
산고를 치른 뒤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산모들처럼 다시는 달리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면서도 숨 가쁘게 달리던 양재천 물줄기와 함께 해온 에이스동호회원들의 따스한 정이 이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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