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7.22
중부지방엔 폭우가 내리고 논경지와 집이 떠내려갈 쯤,
여름을 즐기고 온 죄책감을 안고 찾아간 강원도 인제.
일주일 이라는 시간이 흘렀음 인지 홍천에서 인제를 잇는 44번 국도는 정상 운행 되었다.
인제읍 합강리에 이르니 내린천과 한계리 쪽에서 내려오는 북천과 만나
그때의 홍수량이 어떠했는지를 강 가장자리에 흔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소양호 상류를 지날때 119대원들이 배를 이용하여 실종자 수색광경을 보았는데,
이곳 내린천에는 군 병사들까지 합세하여 대대적으로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가리산리로 들어가는 길은 리빙스톤교를 지나 덕적리를 거치는 길인데,
이 길은 복구가 되지않아 내린천변을 따라가는 31번 국도를 이용 하기로 했다.
얼마 가지않아 이번에 내린 폭우의 정도를 가늠할수 있는 산사태와 가옥유실을 목격할수 있었다.
31번국도 하추리에서 가리산리로 들어가는 길이 있는데 이길 역시 부분적으로는 흔적조차 없다고 하여
조금 더 돌아가는 하답으로의 길을 택했다.
길은 곳곳이 끈겨 임시로 복구를 해놓아 승용차로는 엉금엉금 기어가다시피하여 가리산리로 접어들으니
이곳은 실종자 수색이 아니라 장비를 이용해 발굴을 하고 있었다.
물이 한꺼번에 밀려내려온 시간이 아침 9시경,
집안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집과함께 떠내려가 토사에 묻혀 버린 것이다.
일요일에는 그렇게 묻힌 시신 1구를 발굴했는데 그래도 4구나 남아 있단다.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계곡에는 마을사람,군인,경찰,119대원들이 시신을 찾느라
계곡은 사람들이 즐비 하다.
도로는 작은계곡에서 밀려내려온 토사와 바위로, 또 때로는 산사태로 막히고,
아예 계곡물에 쓸려 '여기가 도로였나' 할정도로 흔적조차 없어진 곳도 있었다.
<가리산리에서 필례약수를 거처 한계령으로 연결된 도로>
< 양쪽으로 물이흘러 도로가 계곡 중앙에 덩그렇게 남아있다.>
산위에는 개발의 흔적도 없는데,곳곳에 산사태가 나 있어 얼마나 많은 비가 왔는지 실감할수 있었다.
이런 산사태로 인한 흙과 암석들이 쓸려 물과 함께 집과 논경지를 매몰 시키고,
계곡을 매워 수위를 상승시켜 범람과 고지대까지 피해를 입혔다.
평상시 비가오지 않을때에는 물한방울 없던 골짝이들도 산사태와 빗물, 뽑혀나간 나무들로 혼합되어
물도 흙도아닌 상태로 밀어 붙였을것 같은 흔적들이 골짝이 마다 커다란 흔적을 남겨 노았다.
얼마나 한꺼번에 많은 비를 �아 부었는 지를 이런 숲이우거진 곳의 흔적으로 가늠 할수 있었고,
처남의 목격담 중에 '나무들이 물에 떠내려 올때 넘어진 상태가 아니고 서있는체로 떠내려 오더라'고
하는 말이, 높이 있는 나무가지가 부러지고 10여m나되는 곳에난 상처가 증명해 주고 있었다.
때로는 직경이 1m가 넘는 저런 나무도 뿌리체 뽑혀 떠내려 왔고,
여기가 밭 이였는지 하천이였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쓸려가고 남은 비닐하우스 만이 여기가 밭이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처 외삼촌댁은 물에 떠내려가 내가 방문 했을때에는 돈사에 자그마한 막사에 머물고 계셨다.
'�년동안 투자해서 비닐하우스 18동을 마련했고 금년부터는 수확하여 빗도갚고
돈도 좀 만저볼수 있을 정도의 피망 농사가 잘 되었는데 이렇게 될줄은 몰랐다'며 한숨을 쉬셨고,
또, '시설물은 그렇다 치더라도 농사지을 땅까지 떠내려 갔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다'
며 이야기하시는 내내 눈물을 훔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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